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0~90년대 한국의 여아 낙태 문제 (문단 편집) === 1980년대 초반 === 1980년대 [[전두환]] 정권은 [[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|매우 높은 강도로 산아제한정책을 실행]]하였다. 우스갯소리긴 하지만, [[박정희]] 정권 시절 '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'라는 식의 산아 제한 표어가 박정희 정권 후반~[[전두환]] 정권 초반 들어 '삼천리 금수강산이 초만원 된다'라는 식으로 표현의 강도가 상당히 높아졌다.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[[차범근]]을 앞세워 '하나만 [[차두리|더 낳고]] 그만 두겠어요'[* 차범근 항목에 걸려있는 그 포스터 맞다.]라는 포스터도 제작했을 정도. --그러나 차범근은 [[페이크]]를 치고 [[차세찌|더 낳았다]].-- 특히나 이때 서구에서 일어난 [[멜서스 트랩]]을 위시한 인구폭탄론이 국내에 대대적으로 회자되었으며, 이에 따른 산아제한정책 실시 국가에 대한 지원이 전두환 정권의 산아제한정책을 부채질하였다. 그리고 이때부터 1명만 낳자고 강요하기 시작했다. 역사상, 아니 현재까지도 이렇게까지 시행을 한 나라는 [[중국]]과 [[한국]] 단 둘뿐이었다고 한다.[*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[[계획생육정책]]으로 강제적으로 시행되었기에 좀 다르기는 하다.] 1980년대 초반에는 태어난 아이가 딸이면 강제 해외[[입양]]을 시키는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1&aid=0001317690|사례]]가 존재했다.[* 참고로 이 기사의 주인공 딸(페이스 베스케즈, 한국 이름 권선영)은 몇 년 후 [[배달의 무도]] 특집에 출연하였다.] 그나마 이것은 양호한 사례였다. 1960년대에는 아이를 '''몰래 살해하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.''' 다행히 마음을 고쳐먹고 키우는 경우도 있었지만. 그 시절에 태어난 분들에게 여쭈어 보면 의외로 '''꽤 많이 일어났었던 일이었으며,''' 유명인 중에도 그런 위기를 겪었던 사람들도 있다. [[조혜련]]이 대표적 사례. 그런데 1980년의 [[성비]]는 105.3:100으로 매우 자연적인 성비였고, 1981~84년까지만 해도 성비는 107~108:100으로 아직까지는 불균형 상태가 심하지는 않았다.[* 1982년은 정상 성비이다.] 참고로 107:100 이하의 경우 자연적인 수치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